Director Nolan's filming techniques, 놀란 감독 촬영법 (실사 촬영, CG 없이, 고집)

 

Director Nolan



오펜하이머를 극장에서 봤을 때, 핵폭발 장면이 시작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폭탄이 터진 뒤 몇 초간 이어지는 정적이 진짜 숨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면, CG 한 톨 없이 찍은 거였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실사 촬영(practical effects)에 집착하는 이유, 그리고 그 방식이 관객에게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제가 직접 겪어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실사 촬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게 다른가

실사 촬영(practical effects)이란 컴퓨터 그래픽 없이 실제 물리적인 장치, 구조물, 폭발물을 이용해 장면을 구현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요즘 블록버스터 영화 대부분이 그린 스크린(green screen) 앞에서 배우들이 텅 빈 공간을 향해 연기하고, 나중에 CG로 세계를 채워 넣는 방식을 택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입니다. 그린 스크린이란 후반 작업에서 배경을 디지털로 대체하기 위해 사용하는 초록색 배경 천을 말하는데, 배우 입장에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상상으로만 연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핵폭발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소리와 연출로 물리학 자체를 전달하려 했다는 느낌이 온몸에 소름처럼 전해졌습니다. 예전에 어떤 리뷰 영상 썸네일에 "물리학자면 미치는 영화"라고 적혀 있길래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직접 보고 나서는 그 표현이 오히려 절제됐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의 트리니티 실험(Trinity Test) 장면을 위해 택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트리니티 실험이란 1945년 인류 최초로 실시된 핵폭탄 폭발 실험으로, 영화의 핵심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제작진은 뉴멕시코에 촬영 기지를 세우고 휘발유와 프로판 가스를 이용한 재래식 폭발물을 조합했으며, 눈부신 섬광을 표현하기 위해 마그네슘과 알루미늄 분말을 활용해 새하얀 빛을 구현했습니다. 여기에 전기를 흘려보낸 수족관, 내부에 조명이 들어오는 금속 풍선, 착화 공을 충돌시키는 방식까지 더했고, 입자들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긴 와이어에 구슬을 매달아 빠르게 회전시키기도 했습니다.

핵폭발 장면이 실제 원자폭탄의 스케일에 비해 아쉽다는 평도 있고, 저도 그 의견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폭발이 터진 뒤 이어지는 몇 초간의 정적, 그리고 소리가 뒤늦게 도달하는 연출은 CG로는 절대 낼 수 없는 무게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CG 없이 구현한 장면들, 얼마나 극단적이었나

놀란 감독의 실사 집착은 오펜하이머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배트맨 비긴즈를 찍을 때 그는 고담 시(Gotham City) 전체를 세트장에 직접 지었고, 배트 케이브(Bat Cave)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부어 폭포 속 동굴을 실제로 구현했습니다. 배트맨의 비행 장면, 기차에 끌려가는 장면, 심지어 온몸에 불이 붙는 장면까지 스턴트맨에게 방화복을 껴입힌 뒤 실제로 불을 붙여 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그냥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 트럭 전복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18개의 바퀴가 달린 초대형 트럭을 시카고 도심 한복판에서 실제로 뒤집은 이 장면은 폭발물을 쓴 게 아니라 트럭 하부에 피스톤 장치를 설치하고, 6주에 걸친 계산과 리허설 끝에 단 한 번 촬영한 것입니다. 피스톤 장치란 유압이나 공압으로 물체를 밀어 올리는 기계 장치로, 이 경우에는 트럭을 순식간에 뒤집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저게 CG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인데, 알고 나서는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놀란 감독이 실사 촬영을 고집하는 방식을 정리하면 대략 이런 식입니다.

  1. 고담 시, 배트 케이브 등 대규모 세트를 직접 건축해 배우들이 실제 공간에서 연기하도록 한다.
  2. 폭발 장면에는 진짜 폭발물 또는 압축 공기 같은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고, CG 보정은 최소화한다.
  3. 인셉션 호텔 복도처럼 세트 자체를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중력 변화 장면을 구현한다.
  4. 테서렉트(Tesseract) 같은 4차원 공간도 실제 세트장으로 제작해 배우가 실제 공간에서 연기할 수 있게 한다. 테서렉트란 4차원 정육면체를 3차원으로 투영한 구조물로,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을 물리적 축으로 경험하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5. 비행기, 선박, 트럭 등 실제 장비를 구입하거나 임대해 직접 파손·충돌시키며 촬영한다.

인터스텔라의 옥수수밭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제작사는 여러 농가에서 따로 촬영하고 나중에 디지털로 합성하자고 제안했지만, 놀란 감독은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인근에 60만 평이 넘는 토지를 직접 구매해 약 1년간 실제로 옥수수를 경작했습니다. 촬영이 끝난 뒤 옥수수를 전부 팔아서 본전 정도는 건졌다고 하는데, 이게 그냥 웃어넘길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 집착의 깊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봅니다. (출처: BFI Sight and Sound에서도 놀란의 영화들은 영상 언어의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고집이 배우들에게 미치는 영향

요즘 영화 제작 환경에서 배우들이 가장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린 스크린 연기입니다. 상대 배우가 없는 공간에서, 실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일은 어떤 베테랑 배우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이른바 퍼포먼스 캡처(performance capture)나 그린 스크린 촬영에서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퍼포먼스 캡처란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해 가상의 캐릭터에 입히는 방식을 뜻합니다.

인터스텔라의 테서렉트 장면에서 매튜 맥커너히가 와이어에 매달려 실제 아역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연기했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카메라 너머 실제 사람이 있고, 실제 공간이 있고, 실제 조명이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의 밀도는 분명히 다릅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던 게 단순히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 연필 마술 장면에서 히스 레저가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 몰입을 깨고 스턴트맨에게 계속 "괜찮아요?"라고 물었다는 비하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소드 연기란 배우가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현실에서도 유지하며 극도의 몰입 상태로 연기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스턴트맨이 세 번이나 의식을 잃을 만큼 위험한 장면이었는데도 끝까지 실사로 밀어붙였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히스 레저의 그 장면이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출처: IMDb, The Dark Knight (2008))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CG가 점점 발전할수록 실사와의 차이가 줄어들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CG가 넘쳐날수록 실사의 무게감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역설이 생긴 것 같습니다. CG 영화가 늘어날수록 특수효과 작업의 질이 들쭉날쭉해지고, 제작비나 시간 압박으로 어색하게 티 나는 장면이 많아진다는 문제도 점점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놀란 감독은 CG를 아예 안 쓰나요?

A. 완전히 쓰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크나이트에서 병원 폭발 장면을 찍을 때 촬영 전날 누군가 유리창을 전부 훔쳐가는 바람에 유리 파편 부분만 어쩔 수 없이 CG로 처리한 사례도 있습니다. 다만 놀란 감독의 원칙은 CG를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한다는 것이고, 가능한 모든 경우에는 실사 촬영을 우선합니다.

Q. 실사 촬영이 CG보다 더 비싼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놀란 감독 본인도 오펜하이머 같은 경우 비행기를 직접 구입해 격납고에 충돌시키는 것이 CG로 처리하는 것보다 오히려 저렴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세트 규모나 장면의 복잡도에 따라 다르지만, 정밀하게 설계된 실사 촬영이 후반 CG 작업보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효율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Q. 인셉션 호텔 복도 회전 장면은 어떻게 찍은 건가요?

A. 복도 형태의 세트 전체를 원형 구조물 안에 넣고 전동기로 회전시키면서 촬영했습니다. 1분에 최대 8회까지 회전 가능한 이 세트 안에서 배우들은 진짜로 중력이 바뀌는 감각을 몸으로 느끼며 연기했고, 그 덕분에 CG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리얼한 무게감이 화면에 담길 수 있었습니다. 이 기법 자체는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먼저 사용된 방식을 놀란 감독이 발전시킨 것입니다.

Q. 오펜하이머 핵폭발 장면은 어떻게 CG 없이 찍었나요?

A. 휘발유, 프로판, 마그네슘·알루미늄 분말, 금속 풍선, 전기를 흘린 수족관, 착화 공, 와이어에 매달린 구슬 등 다양한 물리적 소재를 조합해 핵폭발의 시각적 요소를 각각 분리해서 촬영한 뒤 광학적으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정확한 기법 전체는 블루레이 부가 영상이 공개되면서 더 상세히 알려질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 공개된 인터뷰와 제작진 증언을 바탕으로 해외 팬들이 재현 실험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놀란 감독의 다음 작품이 어떤 장면으로 또 한 번 "이게 CG가 아니라고?"라는 반응을 끌어낼지, 솔직히 기대가 먼저 됩니다. 실사 촬영의 한계를 매번 스스로 다시 그어가는 감독인 만큼, 그 다음이 어디까지일지 예측 자체가 의미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이미 본 놀란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면, 이번엔 장면 하나하나가 어떻게 찍혔을지 생각하면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분명히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YqsNAWD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