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ears Prada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비하인드, 원작차이, 직장 생활)

 

영화 리뷰





솔직히 저는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보면서 "프라다가 명품 중에서도 제일 비싼 브랜드구나"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커서야 알았죠, 프라다가 사실 명품 중에서는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축에 속한다는 걸. 그 정도로 이 영화가 제 안에서 '화려함의 상징' 그 자체였던 겁니다. 2006년에 개봉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단순한 패션 영화가 아닙니다.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에 발을 들인 뒤 다시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비하인드-소설이 먼저냐 영화가 먼저냐, 사실 폭스가 더 빨랐다

이 영화의 뿌리는 2003년 출판된 동명 소설입니다. 저자 로렌 와이스버거는 실제로 세계 최고의 패션 잡지 보그(Vogue)에서 1년간 비서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자전적 소설(autobiographical novel)이란 작가 본인의 실제 경험을 허구적 형식에 녹여낸 장르를 말하는데, 이 책이 딱 그 케이스입니다. 자신은 주인공 앤드리아로, 보그는 런웨이 매거진으로, 그리고 실제 상사였던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미란다 프리슬리로 변환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폭스가 원고를 읽은 시점입니다. 책이 출판되기도 전에 미리 원고를 검토한 폭스는 결말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작에 즉시 착수했습니다. 미란다라는 악역 캐릭터 하나만으로 흥행을 확신했다는 건데,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완벽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책과 영화 사이에는 생각보다 차이가 큽니다. 핵심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소설 속 앤드리아는 흡연자이고, 남자친구는 요리사가 아닌 교사입니다.
  2. 나이젤은 원작에서 동성애자로 비중이 작았지만, 영화에서는 핵심 조력자로 격상됩니다.
  3. 엔딩이 완전히 다릅니다. 소설은 앤드리아가 미란다에게 욕설을 퍼붓고 퇴사하는 다소 충동적인 결말인 반면,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며 헤어지는 훨씬 성숙한 구조입니다.
  4. 에밀리는 원작에서 미국인이었으나, 배우 에밀리 블런트가 영국식 발음을 고집해 영화판에서는 영국인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에만 4명의 각본가(screenwriter)가 매달린 결과물인 만큼, 영화는 원작의 '통쾌한 복수극'이라는 틀을 버리고 훨씬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방향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원작보다 영화 평가가 더 높은 이례적인 케이스가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기준으로도 이 영화는 평론가 지수 75%, 관객 지수 82%를 기록하며 상업 영화로서 상당히 견고한 평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작차이-메릴 스트립이 바꾼 것들, 그리고 100만 달러짜리 의상들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그냥 "무서운 상사 연기"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배우 본인이 캐릭터 해석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걸 직접 설계했는지 알고 나면 다시 보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우선 미란다의 가장 유명한 특징, 바로 낮고 조용한 목소리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미란다는 직원들에게 고함을 치는 전형적인 폭군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은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속삭이는 편이 더 공포스럽다고 판단해 이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캐릭터 해석(character interpretation)이란 배우가 대본에 명시되지 않은 심리와 태도를 스스로 설정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메릴 스트립의 이 판단은 결과적으로 미란다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걸크러쉬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직접 건드린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후반부 대사 "다들 나처럼 되길 원해"를 "우리처럼"으로 수정했고, 파란 스웨터 독백 장면도 원래 격자무늬 치마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녀가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 스웨터로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세룰리안 블루란 청록색과 하늘색의 중간쯤 되는 색조를 가리키는 색채 용어로, 그 장면의 대사와 맞물려 패션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는 명장면이 탄생했습니다. 참고로 세룰리안 블루 스웨터 이론은 작가가 창작한 허구이며 실제 패션 역사와는 무관합니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의 의상비는 약 1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영화 역사상 가장 비싼 의상비였습니다. 프라다, 샤넬, 발렌티노, 지방시, 마놀로 블라닉, 톰 포드 등 패션계 최상위 브랜드들이 총출동했음에도 정작 패션 업계 인사들은 대부분 출연을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영화에 강한 반감을 표했고, 그녀의 영향력이 패션계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4대 패션 컬렉션 일정이 그녀의 스케줄에 맞춰 조정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까요. 예외적으로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메릴 스트립의 열성 팬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무릅쓰고 출연했고, 영화 속 미란다의 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앤 해서웨이와 관련한 비하인드도 흥미롭습니다. 이 역할은 원래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먼저 제안됐지만 거절당했고, 앤 해서웨이가 이어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첼 맥아담스가 연기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래도 앤 해서웨이가 너무 잘 해냈기 때문에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이 더 큽니다. 해서웨이는 오디션 때부터 이 역할을 강력히 원했고, 실제 백화점에서 어시스턴트 경험을 쌓으며 배역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앤드리아가 설정상 55 사이즈라고 생각해 7kg를 찌웠는데, 정작 영화사가 준비한 명품 의상들이 44~55 사이즈여서 촬영 직전 다시 7kg를 감량해야 했습니다. 영화 초반 통통해 보이는 장면들은 실제로는 두터운 패딩을 껴입어 표현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직장 생활 후에 다시 보면 달라지는 것들

저는 사회 초년생이 되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어릴 때는 "나쁜 상사에게 시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봤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고 나니 미란다도, 앤드리아도, 에밀리도, 나이젤도 전부 그냥 자기 분야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로 보이더라는 겁니다. 악의를 가진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 이 영화의 진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그냥 가치관의 충돌이고, 선택의 문제입니다.

제 경험상 이게 굉장히 현실적인 묘사입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것들이 쏟아졌고, 처음엔 그냥 살아남기 위해 나답지 않게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쌓이면서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까 어느새 그 조직의 논리를 옹호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앤드리아가 런웨이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볼 때 묘하게 불편한 기분이 드는 건, 아마 그 모습이 저랑 너무 닮아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인정 욕구(need for validation)란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심리적 동기를 말하는데, 조직에서 이게 얼마나 강력한 동인이 되는지를 이 영화는 꽤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미란다라는 인물을 다시 보면, 그녀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패션 편집장(fashion editor-in-chief)이란 패션지의 모든 콘텐츠 방향성과 예산, 협력 브랜드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를 말합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노력과 희생이 어마어마했을 거라는 걸,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밀리만 해도 앤드리아가 처음 왔을 때 "인사과가 완전히 포기한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그 전에 얼마나 많은 비서들이 나가떨어졌는지 생각하면 그 자리를 버티고 있던 에밀리가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가 보입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겠더라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도 다시 읽힙니다. "성공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감독은 이 질문을 앤드리아에게 계속 던집니다. 그리고 앤드리아는 결국 미란다의 차에서 내려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죠. 중요한 건 그녀가 도망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볼수록 더 확신하게 되는 부분인데, 앤드리아는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봤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미란다가 미소를 보냈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IMDB에서도 이 영화의 유저 평점은 6.9점으로, 단순한 패션 영화치고는 매우 견고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직접적인 실화는 아니지만,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저자 로렌 와이스버거가 보그에서 1년간 비서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며, 실제 상사였던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미란다 프리슬리의 실존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영화의 세부 설정과 결말은 원작 소설과도 상당히 다릅니다.

Q. 영화 속 나이젤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나요?

A. 나이젤은 원작 소설에서도 등장하지만 비중이 매우 작고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영화판에서 핵심 조력자로 격상된 것은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결정된 것으로, 특정 실존 인물을 직접적으로 모델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배우 스탠리 투치가 매우 인상적으로 연기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캐릭터입니다.

Q. 메릴 스트립은 실제로도 그렇게 차가운 사람인가요?

A.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메릴 스트립은 주변인들에게 굉장히 자상하고 따뜻한 성격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촬영 기간 내내 앤 해서웨이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살얼음 같은 관계를 유지했고, 첫날 앤 해서웨이에게 "이게 너에게 마지막으로 해주는 좋은 말"이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완전한 캐릭터 몰입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Q. 영화 속 샤넬 부츠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A. 있습니다. 앤드리아가 처음으로 제대로 차려입고 출근하는 장면에서 샤넬 부츠가 등장하는데, 이는 단순한 패션 선택이 아닙니다. 코코 샤넬을 상징하는 아이템인 샤넬 부츠는 평소 패션 업계를 삐딱하게 바라보던 앤드리아가 그 세계에 존중을 표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됩니다. 의상 감독이 의도한 설정이라고 합니다.

Q. 속편이 제작될 가능성이 있나요?

A. 원작 소설의 속편 <복수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존재하지만, 제작진과 주요 배우 모두 1편으로 남기는 것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현재로서는 속편 제작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습니다.

재방이 30번을 넘어가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평범한 일상이 지겹게 느껴지는 날이면 이 영화를 꺼내 봅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오고, 매번 조금씩 다른 감정이 남습니다. 패션 영화로 보고 싶으면 패션 영화로 봐도 좋고, 직장 생활의 교과서로 봐도 좋고, 성공과 자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봐도 좋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그냥 지금 당장 틀어 보세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vRsjFhRpi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