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미스테리오인 게시물 표시

Spider-Man Far From Home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숨겨진 복선, 저평가된 빌런, 오마주)

이미지
솔직히 저는 파 프롬 홈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유럽 관광 배경의 가볍고 발랄한 마블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영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이었습니다. 페이즈 3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인피니티 사가 11년의 마무리를 짊어진 영화이기도 했고, 그 안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실 벽 속에 숨겨진 복선 파 프롬 홈의 연출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의외로 교실입니다. 영화 초반 피터의 교실 한쪽 벽에는 아이언맨 그림이 붙어 있고, 반대편 벽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Surrealism) 회화의 대표작으로, 초현실주의란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의 진실을 표현하려는 20세기 예술 운동입니다. 이 그림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모두 진실인가?"입니다. 감독이 이 그림을 아이언맨 그림과 정반대 벽에 배치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영웅처럼 등장하지만 사실은 빌런인 미스테리오를 상징하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이 복선을 미리 알고 보면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읽힙니다. 저는 처음 봤을 때 당연히 이런 걸 알아챌 리가 없었고, 나중에 알고 나서 "이걸 그냥 지나쳤다고?" 싶어서 혼자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피터의 스파이더 센스(Spider-Sense), 즉 눈으로 보지 않고도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이 영화에서 "피터 팅글"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된 것도 재밌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번역가 황석희 씨는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피터가 오글거려서 싫어해야 하는 동시에 관객에게는 스파이더 센스라는 이미지를 연상시켜야 한다는 이중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피터 뾰로롱부터 피터 팅글까지 수많은 후보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물이 그 표현이었던 겁니다. 번역 하나가 이 정도 고민의 산물이라는 게, 직접 들었을 때 꽤 인상 깊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