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der-Man Far From Home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숨겨진 복선, 저평가된 빌런, 오마주)
교실 벽 속에 숨겨진 복선
파 프롬 홈의 연출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의외로 교실입니다. 영화 초반 피터의 교실 한쪽 벽에는 아이언맨 그림이 붙어 있고, 반대편 벽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Surrealism) 회화의 대표작으로, 초현실주의란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의 진실을 표현하려는 20세기 예술 운동입니다. 이 그림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모두 진실인가?"입니다.
감독이 이 그림을 아이언맨 그림과 정반대 벽에 배치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영웅처럼 등장하지만 사실은 빌런인 미스테리오를 상징하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이 복선을 미리 알고 보면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읽힙니다. 저는 처음 봤을 때 당연히 이런 걸 알아챌 리가 없었고, 나중에 알고 나서 "이걸 그냥 지나쳤다고?" 싶어서 혼자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피터의 스파이더 센스(Spider-Sense), 즉 눈으로 보지 않고도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이 영화에서 "피터 팅글"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된 것도 재밌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번역가 황석희 씨는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피터가 오글거려서 싫어해야 하는 동시에 관객에게는 스파이더 센스라는 이미지를 연상시켜야 한다는 이중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피터 뾰로롱부터 피터 팅글까지 수많은 후보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물이 그 표현이었던 겁니다. 번역 하나가 이 정도 고민의 산물이라는 게, 직접 들었을 때 꽤 인상 깊었습니다.
미스테리오, 저평가된 빌런에 대한 솔직한 생각
미스테리오(Mysterio)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즉 마블이 영화로 구현한 세계관 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빌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약하다"는 이유 하나로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미스테리오가 한 일은 단순히 홀로그램을 썼다는 게 아닙니다.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전 세계에 공개했고, 쉴드(S.H.I.E.L.D.)까지 이용했습니다. 쉴드란 마블 세계관에서 초인 관련 사건을 다루는 비밀 국제 안보 기관으로, 닉 퓨리가 이끄는 조직입니다. 이 조직의 자원을 통째로 속여 넘기고 활용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지능과 전략적 사고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마법처럼 보이는 드론 쇼"를 펼친 게 아니라, 체계적인 기만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죠.
그의 코스튬 디자인도 그냥 멋으로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갑옷은 블랙팬서와 토르의 디자인에서, 마법 능력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레이저처럼 보이는 공격 방식은 아이언맨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자신이 슈퍼히어로라고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적 계산이 의상 디자인부터 반영된 겁니다. 홀로그래픽 시스템(Holographic System), 즉 빛을 이용해 실제처럼 보이는 3차원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을 무기이자 PR 도구로 쓴 캐릭터는 MCU에서 미스테리오가 처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미스테리오가 진짜로 멀티버스(Multiverse)에서 건너온 히어로이고, 엘리멘탈즈도 실제 위협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멀티버스란 우리 우주와 평행하게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들의 집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마블에서 이후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설정입니다. 그 방향으로 갔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미스테리오 의상을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마블이 원래 CG로만 처리하려던 계획을 바꾸고 실제 의상을 제작해줬다는 뒷이야기도 캐릭터에 대한 배우의 애정을 잘 보여줍니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배우가 연기할 때, 그 온도가 화면에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오마주로 가득한 장면들, 그리고 나이트 몽키
파 프롬 홈을 다시 보면서 감탄했던 부분 중 하나는 전작 영웅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가 얼마나 세밀하게 배치되어 있는가였습니다. 오마주란 특정 작품이나 인물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담아 그 요소를 작품 안에 녹여 넣는 표현 방식입니다.
피터가 해피의 비행기 안에서 새 슈트를 제작하는 장면에서 취하는 손동작은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가 슈트를 설계할 때의 모습을 그대로 따온 것이었습니다. 이건 톰 홀랜드가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며 토니를 떠올린 해피가 음악을 틀 때 스파이더맨 특유의 손동작을 취하는 장면은 존 파브로의 애드리브였습니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이 정도라는 게, 보는 내내 "이 사람들 진짜 마블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해피와 피터 친구들이 미스테리오의 드론을 막을 때 등장하는 무기들도 그냥 지나쳤다면 아쉬울 장면입니다. 아이언맨을 상징하는 갑옷, 토르를 상징하는 메이스, 캡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방패가 각각 등장합니다. 여기서 제가 재밌다고 느낀 해석이 있습니다.
- 갑옷을 드론에 부수며 희생시킨다 — 아이언맨이 엔드게임에서 목숨을 바친 희생을 상징합니다.
- 메이스는 끝까지 들고 있다 — 토르는 살아서 현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방패는 끝내 사용하지 못한다 — 캡틴 아메리카의 은퇴를 암시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의도된 연출인지 해석의 여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블 이스터에그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 읽기가 자연스럽게 됩니다. 어쩌면 그게 마블이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겠죠.
나이트 몽키 슈트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쉴드가 급조해준 슈트라는 설정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 부분이 뚫려 있고, 벽면 접착 기능 같은 특수 기능이 없습니다. 플립 업 고글(Flip-up Goggles), 즉 렌즈를 위로 젖혀 올릴 수 있는 방식의 고글은 1980년대에 유행했던 플립 업 선글라스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감독이 직접 요청한 디자인이었습니다. 토니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골랐다는 점에서, 이 슈트가 단순한 변장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쿠키 영상 그리고 기다림의 기억
파 프롬 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J.K. 시몬스가 연기한 J. 조나 제임슨 편집장이 화면에 등장했을 때 극장 안이 순간 얼어붙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이미슨 캐릭터는 샘 레이미 감독의 구작 시리즈에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배우가 MCU 화면에 나타났을 때 그 충격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톰 홀랜드조차도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장면의 존재를 알았다고 합니다. 감독과 극소수 제작진, 마블·소니 고위 간부, 그리고 J.K. 시몬스가 캐스팅 승낙 후 직접 축복 전화를 걸었다는 샘 레이미 감독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극비 연출이었습니다.
그 쿠키 영상을 보고 나서 저는 "와, 미스테리오 미친놈" 한 마디를 내뱉고는, 다음 스파이더맨은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2년 5개월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 세월 동안 전역을 했고, 복학해서 2학기를 마쳤습니다. 참 오래도 기다렸습니다. 마블이 팬을 이렇게 오래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게, 이스터에그 하나하나가 그 기다림을 버티게 해주는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기억도 있습니다. 파 프롬 홈을 보기 전에 했던 스파이더맨 게임 때문에 미스테리오가 빌런이라는 걸 이미 알고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블을 전혀 모르는 아버지에게 게임 이야기를 하다가 "미스테리오가 악당으로 나온다"고 말했더니, 아버지가 정색하면서 "영화가 재미없어졌다"고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웃기면서도 미안합니다. 스포일러의 파괴력을 그때 처음 체감했습니다. 출처: Marvel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파 프롬 홈은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스포일러 방지 캠페인이 상당히 강조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TMI를 하나 더 얹자면, 해피가 비행기 안에서 튼 노래는 AC/DC의 "Back in Black"입니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대표 OST로도 유명한 헤비 메탈(Heavy Metal) 장르의 곡인데, 헤비 메탈이란 강렬한 기타 리프와 높은 볼륨을 특징으로 하는 록 음악의 하위 장르입니다. 재밌는 건 피터가 이 노래를 AC/DC가 아니라 레드 제플린 곡으로 착각하는 대사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Back in Black"이라는 부제를 단 스파이더맨 코믹스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런 레이어가 쌓여 있는 영화라는 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Rotten Tomatoes에서도 파 프롬 홈에 대한 비평가와 관객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 프롬 홈에서 교실 벽에 걸린 그림이 무슨 의미인가요?
A.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언맨 그림과 정반대 벽에 배치한 것은 처음엔 영웅처럼 보이지만 빌런인 미스테리오를 암시하는 복선이었습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구도였다고 합니다.
Q. 미스테리오 의상 디자인에 숨겨진 의미가 있나요?
A. 있습니다. 갑옷은 블랙팬서와 토르, 마법 능력은 닥터 스트레인지, 레이저 공격 연출은 아이언맨에서 각각 차용했습니다. 대중에게 슈퍼히어로로 인식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의상 디자인 단계부터 반영된 것으로, 원래 마블은 CG로만 처리하려 했지만 제이크 질렌할의 요청으로 실제 의상을 제작했습니다.
Q. 나이트 몽키 슈트에 왜 손가락 구멍이 없나요?
A. 쉴드가 급조해서 만들어준 슈트라는 설정을 시각적으로 살리기 위한 연출입니다. 토니의 슈트처럼 벽면 접착 기능 같은 특수 기능을 넣을 시간이 없었다는 설정이고, 플립 업 고글 역시 감독이 "토니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디자인"을 의도해 1980년대 플립 업 선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Q. 피터 팅글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A. 번역가 황석희 씨가 스파이더 센스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고심 끝에 만들어낸 표현입니다. 피터 본인이 들었을 때 오글거려서 싫어해야 하고, 동시에 관객에게는 스파이더 센스라는 이미지를 연상시켜야 하는 이중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피터 뾰로롱부터 다양한 후보를 거쳐 최종 선택된 표현이라고 합니다.
Q. J. 조나 제임슨 등장이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나요?
A. 샘 레이미 감독의 구작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J.K. 시몬스가 동일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MCU와 구작 시리즈가 별개의 세계관임에도 같은 배우가 동일 캐릭터로 등장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고, 제작진 극소수만 알고 있던 극비 캐스팅이었습니다. 톰 홀랜드도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합니다.
파 프롬 홈은 "홈커밍의 발랄함을 유지하면서 인피니티 사가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알면 알수록 설계의 촘촘함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스터에그 하나를 발견하면 또 다른 걸 찾고 싶어지는, 그 중독성이 마블 팬을 붙잡아두는 힘인 것 같습니다. 아직 자세히 안 보셨다면 교실 장면부터 다시 한번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gX1cZTsCG8&t=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