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der-Man, 토비 스파이더맨 (캐스팅, 제작 비화, 세대 비교)
토비 맥과이어 캐스팅, 왜 하필 그였을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콜린 패럴, 이완 맥그리거. 스파이더맨 주인공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배우들입니다. 지금 봐도 쟁쟁한 이름들인데, 감독 샘 레이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당시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토비 맥과이어였죠.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결정이었습니다.
샘 레이미가 토비를 점찍은 건 영화 사이더 하우스(The Cider House Rules, 1999년 개봉)를 보고 나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가 주목한 건 영웅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아니었습니다. 영웅 스파이더맨과 평범한 청년 피터 파커, 이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표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가, 바로 그 부분이었죠.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항상 양아치들에게 치이고,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얼어붙고, 그녀가 대놓고 그린 라이트를 보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피터의 찌질함을 토비는 진심으로 살아냈습니다.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인물인 것처럼요. 저는 이 찌질함이야말로 스파이더맨을 근본으로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토비가 정말 잘 해줬습니다.
캐스팅 과정에서 흥미로운 비하인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악당 그린 고블린 역시 존 말코비치, 짐 캐리, 로버트 드니로 같은 거물급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었는데, 윌렘 대포는 대본이 너무 마음에 들어 본인이 직접 감독을 찾아가 오디션을 자청했다고 합니다. 그의 열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아서, 180개의 부품으로 구성돼 착용에만 30분이 넘게 걸리는 그린 고블린 코스튬을 입고 스턴트 장면의 95% 이상을 직접 소화했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그 캐릭터에 진심이었던 셈입니다.
156번 촬영, 거미 마취… 이 영화의 제작 비화들
다시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CG가 아니라 실제 촬영이었던 장면들이었습니다. 피터가 학교 식당에서 떨어지는 쟁반을 공중에서 받아내는 그 장면, 저는 당연히 CG나 와이어 작업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틀린 가정이었습니다.
감독 샘 레이미는 토비 맥과이어의 손에 접착제를 바른 뒤 이 장면을 성공할 때까지 촬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156번을 찍고, 16시간 연속 촬영 끝에 해당 씬을 완성했습니다. 이 장면은 레이미 감독이 자신의 초기작 크라임 웨이브(Crime Wave)의 한 씬을 오마주한 것이기도 해서, 감독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을 겁니다.
피터를 물어 초능력을 부여하는 거미 역시 클로즈업 장면을 제외하고는 진짜 거미를 사용했습니다. 당시 CG 수준에 불만족스러웠던 감독은 거미를 마취시키고 얇은 덮개를 씌운 뒤 그 위에 메이크업을 칠해 촬영했습니다. 거미가 죽으면 영화가 망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이유로 특별히 더 신경 썼다는 후일담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참고로 원래는 독성이 강한 블랙 위도우(Black Widow), 즉 검은 과부 거미를 쓰려 했으나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독 때문에 털꼬마 거미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배우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토비 맥과이어가 촬영 중 겪은 일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유명한 빗속 키스신 촬영 중 코에 빗물이 계속 들어차 숨이 막힐 뻔했습니다.
- 엔딩 전투 씬에서 실수로 턱에 실제 주먹을 얻어맞았습니다.
- 코스튬이 머리 부분을 제외하고 완전 일체형으로 제작되는 바람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전부 벗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촬영 중반부터 수정이 이루어져 별도의 개구부가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생이 쌓여서 그 진정성이 화면에 배어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액션은 물론이고 마블 공식 캐릭터 페이지(Marvel)에서도 피터 파커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이 '인간적인 고뇌와 책임감'인데, 그게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 촬영 현장에서부터 몸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코믹스 이스터에그(Easter Egg)도 가득합니다. 이스터에그란 제작진이 특정 팬들만 알아볼 수 있도록 본편 안에 숨겨둔 깜짝 요소를 뜻합니다. 피터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대사 속 신문에 커트 코너스 박사, 즉 훗날 리저드(Lizard)가 될 캐릭터가 등장하고, 데일리 뷰글 신문사 장면에서 카메오로 나오는 사진기자는 에디 브록, 즉 베놈(Venom)의 전신입니다. 코믹스 덕후였던 샘 레이미 감독이 팬들을 위해 곳곳에 숨겨둔 디테일들이죠. DC 코믹스 이스터에그도 있는데, 피터가 거미줄 연습 중 내뱉는 대사 중에 슈퍼맨의 캐치프레이즈 "업 앤 어웨이(Up and Away)"와 샤잠(Shazam)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대를 거쳐도 토비가 근본인 이유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후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로 이어지며 각자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해석했습니다. 스파이더버스(Spider-Verse), 즉 서로 다른 평행 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공존한다는 멀티버스 개념은 이제 MCU의 핵심 내러티브가 될 정도로 확장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보고 나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세 명 중 히어로로서 가장 많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 건 토비의 스파이더맨이었다고요.
이 시리즈가 근본으로 불리는 이유는 히어로로서의 스펙터클 때문만이 아닙니다. 찌질함에서 시작해, 실수하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책임을 선택하는 피터 파커라는 인간의 성장 서사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주인공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이 1편과 2편에서 가장 뚜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스파이더맨임을 밝히기 전에 그녀를 구해내고 키스하는 장면, 영웅으로서의 슬럼프와 극복, 영웅에게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테마까지, 히어로물의 클리셰가 이렇게 제대로 작동하는 시리즈가 드뭅니다.
반면 최근 스파이더맨을 보면서 제가 느낀 아쉬움은 성장의 부재입니다. 슈트를 갈아입고, 더 강한 기술을 얻고, 더 큰 전투를 치르는데, 정작 스파이더맨 본인이 내면적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MCU의 힘을 빌려 큰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러브라인도, 성장 서사도 전작들에 비해 옅다는 인상입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빌런이 캐릭터를 캐리하는 구도가 반복된다면 주인공의 존재감은 자연히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입니다. 이 문장은 원래 1962년 발행된 어메이징 판타지(Amazing Fantasy) 제15호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작가 스탠 리(Stan Lee)는 훗날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두고 쓴 대사는 아니었다고 밝혔는데, 영화 스파이더맨 IMDB 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대사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2002년 영화 개봉 이후의 일입니다. 이 한 문장이 이후 모든 스파이더맨 작품의 정신적 근간이 된 셈인데, 저는 그 무게를 가장 잘 체화한 스파이더맨이 토비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토비 맥과이어 스파이더맨에서 거미줄이 몸에서 직접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A. 원작 코믹스에서는 피터가 직접 제작한 기계 장치 웹슈터(Web-Shooter)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감독 샘 레이미는 고등학생이 단기간에 그런 강력한 장치를 만든다는 설정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해, 유전자 변형 거미에게 물린 부작용으로 몸에서 직접 거미줄이 나오는 설정으로 바꿨습니다. 덕분에 미공개 예고편에는 웹슈터가 등장하는 초기 버전 피터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Q. 식판을 받아내는 장면이 정말 CG 없이 찍은 건가요?
A. 맞습니다. 토비 맥과이어의 손에 접착제를 붙이고 실제로 촬영한 장면입니다. 성공할 때까지 무려 156번을 재촬영했고, 총 16시간이 걸렸습니다. 감독 샘 레이미 본인의 초기작 크라임 웨이브 속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그만큼 공을 들인 씬이었습니다.
Q. 그린 고블린 코스튬이 원래 다른 디자인이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네, 초기 컨셉은 원작 코믹스처럼 보라색 후드와 표정이 변하는 마스크 디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주얼이 너무 강렬하고 비호감이라는 이유로 삭제됐고, 현재의 초록색 갑옷 형태로 수정됐습니다. 현재 버전도 충분히 쇼킹하지만, 초기 컨셉과 비교하면 상당히 순화된 결과물입니다.
Q. 토비 스파이더맨과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가장 큰 차이는 성장 서사의 깊이입니다. 토비의 스파이더맨은 찌질한 너드에서 책임을 자각한 영웅으로 변화하는 내면의 캐릭터 아크가 뚜렷합니다. 반면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MCU 세계관 안에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구도가 강해서, 스파이더맨 본인만의 독립적인 성장이 상대적으로 옅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Q. 스파이더맨 1편에 한글이 등장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스파이더맨이 처음 활약을 펼치는 배경이 한인 마트 인근이었기 때문에 초반부 장면에서 한글 간판이 여럿 등장합니다. 또한 이 영화가 소니 제작이었음에도 건물주의 항의 덕분에 광고판의 삼성 로고가 삭제되지 않았고, 덕분에 삼성은 예상치 못한 광고 효과를 누렸다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얼마 전 다시 정주행하면서 이 시리즈를 명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스케일이나 기술력이 아니라, 히어로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선택의 무게를 제대로 담아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혹은 오래전에 보고 잊고 계셨다면 한번 다시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분명 다른 감정이 올라올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6tGy-NwE4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