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dyssey, 영화 오디세이 (트로이목마, 폴리페모스, 아이맥스)
트로이목마, 실제로 만들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흔히 대작 영화라고 하면 CG로 만들어낸 디지털 세트를 떠올립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디세이의 트로이목마는 실물로 제작된 구조물입니다. 높이 10미터에 무게만 3.6톤. 배우들이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며칠을 버텼고, 몇몇은 밀폐 공간에서 탈수와 극한 상황을 견뎌냈습니다. 이걸 알고 보면 목마가 트로이 해변에 비스듬히 박혀 있는 장면이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이란 영화의 물리적 공간과 시각적 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상당 부분을 후반 작업인 VFX로 대체합니다. 그런데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그 흐름을 역행했습니다. 아이슬란드부터 그리스까지 여섯 나라의 오지에서 91일간 촬영하며 만들어낸 필름이 640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입안에 바다의 짠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특히 트로이 점령 장면이 끝나고 루드비그 고란손의 음악이 터지는 순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사운드트랙이 단순히 분위기를 돕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오디세우스의 감정 상태를 설명하는 구조였습니다. 음악을 영화 언어로 사용한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싶었습니다.
놀란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활용한 주요 실물 촬영 기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트로이목마: 실제 목재와 철골로 제작된 10미터 높이 구조물. 배우 전원 내부 탑승 촬영.
- 폴리페모스: 18미터 높이의 실물 로봇 거인(애니마트로닉스)을 동굴 세트에 설치. 자연광으로만 촬영.
- 라이스트리고네스(거인 종족): 213센티미터 이상의 스턴트 배우들과 137센티미터의 여성 스턴트 배우를 함께 기용하여 원근법으로 크기 차이를 연출.
- 키르케의 마법 장면: 신체 변형 효과에 점토 기반 애니마트로닉스 사용. CG 삽입 없음.
일반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영화는 세트 80퍼센트 이상을 후반 CG로 완성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오디세이에서 느낀 압도감의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눈빛이었습니다. 허공을 향해 연기한 게 아니라 진짜 거인을 올려다보며 연기했기 때문에 그 공포가 화면 밖으로 넘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폴리페모스의 비명, 일반관에서도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이맥스를 예매하지 못하고 일반관에서 봤습니다. 아이맥스에서 봐야 진짜 경험이라는 말이 많아서 살짝 걱정도 했는데, 막상 폴리페모스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귀를 막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그 비명 소리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폴리페모스(Polyphemus)란 그리스 신화 속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로, 오디세우스 일행을 동굴에 가두고 잡아먹으려 한 존재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18미터 높이의 실물 로봇 거인으로 구현했는데, 자연광 조명만으로 촬영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인공 조명을 쓰면 너무 '영화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동굴 안의 날 것 같은 공포감이 사라진다는 판단이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그 판단은 완전히 옳았습니다.
애니마트로닉스(Animatronics)란 기계 장치로 움직임을 구현하는 실물 모형 기술로, CG가 등장하기 이전 헐리우드 특수효과의 핵심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배우 눈앞에 실제로 움직이는 거대한 인형을 세워두는 겁니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CG가 이를 대부분 대체했지만, 놀란 감독은 배우의 반응에서 나오는 진짜 공포가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믿음 아래 이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키르케 장면에서 병사들이 짐승으로 변하는 과정도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장면, 그걸 지켜보는 동료들의 얼굴. 그 연출은 보디 호러(Body Horror), 즉 신체 변형과 훼손을 통해 공포를 유발하는 장르 기법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보디 호러란 인간 신체의 변형이나 해체를 통해 존재론적 불안을 자극하는 공포 표현 방식입니다. 제 경험상 놀란 감독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이 장면을 고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르고스 장면. 20년 만에 돌아온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다 그대로 눈을 감는 사냥개. 화면에 거창한 설명이 없는데도 눈물이 났습니다. 20년 동안 권력에 눈이 먼 인간들이 집안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그 개 하나가 그 모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줬습니다. 놀란 감독이 도대체 이 이야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건지 진짜 감탄했습니다.
아이맥스 필름, 놀란이 고집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70mm 아이맥스 필름(IMAX Film)이란 일반 영화 필름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이미지를 담는 대형 포맷 촬영 방식으로, 디지털 카메라로는 구현할 수 없는 해상도와 질감을 가집니다. 쉽게 말해 사진으로 치면 휴대폰 카메라와 중형 필름 카메라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됩니다. 오디세이는 전 장면을 이 방식으로 촬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맥스는 일부 액션 장면이나 전투 시퀀스에만 적용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오디세이에서 아이맥스 필름의 효과가 진짜로 느껴진 건 오히려 조용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저승의 땅을 헤매는 오디세우스의 얼굴 클로즈업, 칼립소의 섬에서 아테나핀을 붙들고 있는 손. 그 질감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칼립소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이 나왔습니다. 칼립소의 감정을 신으로서의 집착이 아니라 '감정적 생존 본능'으로 접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7년 동안 섬에 갇혀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온 존재의 지침. 여신이라기보다 연결이 끊긴 인간처럼 보였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 해석 덕분에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의 관계가 단순한 감금 서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채우려 했던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도 흥미로웠습니다. 놀란 감독 특유의 비선형 서술(Non-linear Narrative)이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지 않고 여러 시점이나 공간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오디세이에서는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가 각자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이야기의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는 방식으로 이 구조를 활용했습니다. 영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미소가 끊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이해됩니다. 이 정도 밀도의 이야기 설계는 정말 드뭅니다.
세이렌 장면도 제 생각과 다르게 연출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이렌은 노래로 선원을 유혹하는 존재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세이렌은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라는 장소가 아니라, 떠나기 전의 이타카가 그리웠던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한 줄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었습니다. 귀향(homecoming)이란 단어가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지를 세이렌이 오히려 가장 정확하게 말해줬습니다. 영국 영화협회 BFI의 Sight & Sound 역시 이 작품의 서사 구조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을 만큼, 이번 영화는 단순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사적 맥락에서 논의될 작품으로 보입니다.
놀란 감독이 직접 밝힌 것처럼, 오디세이는 거의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이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몸으로 함께 견뎌내는 경험을 목표로 했습니다. 제가 직접 봐보니 그 의도는 성공했습니다. 3시간이 3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Metacritic 등 해외 평단에서도 이번 작품은 놀란 필모그래피의 종합판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디세이 영화, 원작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미리 읽고 가야 하나요?
A. 미리 알고 가면 분명히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자체가 인물 대사 안에 배경 설명을 자연스럽게 깔아두었기 때문에, 원작을 모르고 가더라도 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처음 트로이 장면을 맞닥뜨리는 게 더 강렬할 수도 있습니다.
Q. 일반관과 아이맥스, 체감 차이가 크게 나나요?
A. 일반적으로 아이맥스와 일반관의 차이는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일반관에서 봤는데도 폴리페모스의 비명 장면에서 귀를 막아야 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이맥스에서 보면 그 압도가 배가될 것은 분명하지만, 일반관도 충분히 강렬합니다. 단, 특별관 옵션이 있다면 당연히 아이맥스를 강력하게 권합니다.
Q. 놀란 감독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나요?
A. 네,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비선형 서술 구조, 즉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는 이야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초반 30분이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그 부분만 넘기면 이후부터는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이 계속 이어집니다. 놀란 전작인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를 한 편이라도 미리 보고 가면 훨씬 편하게 입장할 수 있습니다.
Q. 3시간 러닝타임, 중간에 지루해지는 구간이 있나요?
A.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루한 구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게 벌써 끝이야?"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각 모험 파트가 독립적인 장르처럼 느껴질 만큼 분위기 전환이 명확해서, 긴 영화를 보는 피로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Q. 맷 데이먼의 연기가 기존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A. 저는 맷 데이먼을 굿 윌 헌팅이나 마션을 통해 봐왔는데, 이번 오디세우스는 확실히 다른 결의 연기였습니다. 이타카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와, 그 과정에서 쌓인 죄책감 사이에서 무너지고 버티는 얼굴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뷰에서 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페넬로페와의 재회 장면을 꼽았는데, 실제로 그 장면은 말없이 화면만 봐도 감정이 전달됩니다.
저는 최소 3회차 이상 더 볼 생각입니다. 처음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놓쳤던 세부 연출들, 두 번째엔 음악과 조명의 변화를, 세 번째엔 오디세우스의 표정 변화만 집중해서 볼 것 같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 가능하면 아이맥스나 돌비로 보시되, 일반관이라도 망설이지 마시길 권합니다. 이건 스크린에서 경험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HVenJg6p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