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eves 도둑들 비하인드 (캐릭터 탄생, 촬영 비화, 캐스팅 비밀)

 

영화 리뷰





도둑들을 10번 넘게 봤는데도 여전히 몰랐던 게 있었습니다. 예니콜이라는 이름이 원래부터 있던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사실. 저도 최근에 다시 보고서야 처음 알았는데, 솔직히 그 이름 없는 도둑들은 상상도 안 되더라고요. 2012년 개봉 당시 1,298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역대 흥행 기록을 새로 쓴 이 영화, 알고 보면 완성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캐릭터 탄생, 이름 하나에 담긴 의도

예니콜은 초기 시나리오에 아예 존재하지 않던 인물입니다. 최동훈 감독이 전지현을 직접 만난 뒤, 도둑들 가득한 냉랭한 분위기 속에 해맑고 긍정적인 캐릭터 하나가 있으면 영화에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에 뒤늦게 만들어낸 인물이죠. 캐릭터의 이름도 흥미롭습니다. 전지현의 대표 CF였던 애니콜 핸드폰 광고에서 따왔는데, 상표명을 그대로 쓸 수 없어서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라면 예, 하고 달려간다"는 의미를 붙여 '예니콜'로 확정했습니다.

본명도 원래는 '예지'였는데 촬영 도중에 바뀌었습니다. 감독이 세련된 외모와 어딘가 촌스러운 이름 사이의 괴리감에서 웃음이 나올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고 하는데, 제가 직접 그 장면들을 돌아보니 그 감각이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고급스러운 외모에 대뜸 "예지야" 소리를 들었다면 그 재미가 반감됐을 겁니다.

잠파노(Zampanò)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잠파노는 이탈리아 영화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1954년작 '길(La Strada)'에서 안소니 퀸이 연기했던 캐릭터에서 따온 것입니다. '길'의 잠파노와 도둑들의 잠파노, 두 인물 모두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순수하고 투박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 이름 하나에 이렇게 많은 레퍼런스(reference, 참고 작품이나 자료를 뜻하는 영화계 용어)가 담겨 있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레퍼런스란 창작자가 특정 작품이나 인물을 의식적으로 참조하여 새 캐릭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씹던껌이라는 닉네임은 또 어떻습니까.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초반부 껌을 유리에 붙이는 장면을 찍다가 영감을 받아 현장에서 바꿨다고 합니다. 단어 자체에 "왕년에 좀 놀던 사람"이라는 뉘앙스도 녹아 있고, 김해숙 배우 본인도 이 이름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도 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나 싶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촬영 비화, 카메라 뒤에서 벌어진 일들

전지현이 예니콜을 연기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장면은 화려한 액션 신이 아니라 담배 씬이었습니다. 예니콜은 흡연자 캐릭터인데, 실제 전지현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아서 촬영 중 기침을 참다 대사를 놓치거나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빨아 NG를 내는 일이 반복됐다고 합니다. 영화 속 여유로운 흡연 신들과 실제 촬영 현장의 간극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넋이 나가는 예니콜의 표정, 기억하시는 분 많을 겁니다. 그 장면 하나를 위해 8번의 테이크(take, 영화에서 한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찍는 것)를 반복했습니다. 테이크란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한 번의 연기 시도를 의미하는데, 최종 선택된 컷은 포커스(focus, 피사체에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것)가 살짝 흔들린 상태였음에도 표정이 너무 완벽해서 감독이 그대로 썼다고 합니다. 결과물로 보면 판단이 맞았습니다.

팹시 역의 김혜수와 관련된 비화 중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영어 발음 이야기였습니다. 극 중 팹시의 콩글리시 발음 때문에 개봉 이후 김혜수가 영어를 못한다는 이미지가 생겨버렸는데, 실제로는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배우입니다. 촬영지인 마카오(Macau) 현지에서 당시 팹시 콜라를 구할 수 없어 코카콜라로 대신한 것, 마카오 박의 선글라스와 팹시의 첫 등장 신이 전작 타짜와 겹칠까 봐 감독과 배우 모두 신경을 곤두세웠다는 이야기들도 촬영 현장의 온도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속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치하고 연출하는 것)도 치밀하게 설계됐습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조명·의상·카메라 앵글 등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뜻합니다. 뽀빠이의 배신을 암시하기 위해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앵글을 살짝 기울여서 그를 담았습니다.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혼자 떨어져 담배를 피우는 샷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인데, 이걸 알고 다시 보니 복선이 도처에 깔려 있더라고요.

도둑들 촬영 현장에서 눈에 띄었던 주요 비하인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예니콜의 다이아 발견 표정 — 8번 테이크, 포커스 흔들린 컷을 최종 선택
  2. 씹던껌의 레이저 차단 껌 장면 — 예상보다 껌이 너무 늘어나 배우들이 실제로 당황
  3. 뽀빠이 —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죽는 결말이었으나 이정재 캐스팅 후 수정
  4. 팹시의 콩글리시 — 한국 도둑 팀 콘셉트를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요청한 발음
  5. 잠파노의 지갑 신 — 원래 예니콜에게 발로 차이는 장면이었으나 캐릭터 이미지상 전편 삭제

캐스팅 비밀, 누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았나

김혜수는 처음에 출연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팹시 캐릭터가 타짜의 정마담과 지나치게 겹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독은 "무조건 김혜수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팹시의 시나리오 자체를 다시 썼고, 그 설득 끝에 김혜수가 합류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팹시를 다른 배우로 대체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봤는데, 도저히 상상이 안 됩니다.

김수현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촬영 당시에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예에 가까웠습니다. 해를 품은 달이 방영되면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건 영화 개봉 이후였죠. 감독은 거대한 선배들 사이에서 주눅 들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키스 신에서 스스로 디테일을 만들어가며 대담하게 연기하는 김수현을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개봉 당시가 아니라 촬영 시점의 무게감으로 그 분량을 이해하는 편이 더 공정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해품달 이후 재평가가 된 거지, 당시엔 기용 자체가 도전이었을 테니까요.

한국 영화 산업 전반을 다룬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자료에 따르면(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천만 관객 영화는 2012년 도둑들을 포함해 현재까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희소성이 이 영화의 캐스팅 비화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팹시라는 이름의 기원도 재밌습니다. 최동훈 감독이 평소 김혜수를 '팹시'라고 부르던 습관에서 그대로 따온 이름입니다. 영화 속 공식 설정인 줄 알았는데 감독의 애칭에서 출발한 거였다는 걸 알고 나서, 이 영화 전체가 감독의 취향과 인연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코카콜라가 등장하는 장면에 팹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아이러니도 마카오 현지 사정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고요.

향수 대사 한 줄도 그냥 탄생한 게 아닙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던 중 사무실에 놀러 온 전지현이 "저는 향수 안 쓰고 로션만 써요"라는 말을 툭 내뱉었고, 감독이 그 자리에서 메모해 대사로 만든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탄생한 대사가 오히려 가장 살아 있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계산해서 쓴 대사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런 온도가 나는 것 같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묘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걸 두고 감독 특유의 '노란 싸구려 낭만'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화려하지 않은데 자꾸 생각나는, 그런 결의 매력이요.

참고로 영화 속 카메오로 등장한 신하균의 잡지 사진은 영화 초반부에 찍었던 촬영 컷을 후반부에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며, 잡지 속에는 '철통같은 보안'이라는 문구가 깨알같이 박혀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걸 알고 나서 다시 봤더니 빵 터졌습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서도 도둑들 관련 기본 정보와 배우 필모그래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예니콜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건가요?

A. 전지현의 대표 CF였던 삼성 애니콜 핸드폰 광고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상표명을 그대로 쓸 수 없어서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라면 예, 하고 달려간다"는 의미를 붙여 예니콜로 변경했고, 본명도 촬영 도중 '예지'에서 '예니콜'로 바뀌었습니다.

Q. 김수현은 도둑들에서 왜 분량이 적은 건가요?

A. 촬영 당시 김수현은 아직 톱스타가 아니라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예에 가까웠습니다. 영화가 개봉될 즈음 해를 품은 달로 크게 뜨면서 분량 차이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현재의 거대한 선배들 사이에 기용된 것 자체가 도전적인 캐스팅이었습니다.

Q. 팹시 역의 김혜수가 영어를 못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이 아닙니다. 김혜수는 실제로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배우로 영어도 유창합니다. 극 중 콩글리시 발음은 한국 도둑 팀의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요청한 것이었고, 팹시 캐릭터에 맞게 일부러 촌스럽게 연기한 결과입니다.

Q. 뽀빠이는 원래 죽는 캐릭터였나요?

A. 네,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배신의 결말로 사망하는 설정이었습니다. 이정재가 캐스팅되자 연출부에서 "굳이 이정재를 죽여야 하나"라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결말이 수정되었습니다. 배우의 무게감이 캐릭터의 운명까지 바꾼 사례입니다.

Q. 도둑들에서 복선이 숨어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뽀빠이를 담는 카메라 앵글을 의도적으로 살짝 기울이는 방식으로 배신을 암시했습니다. 씹던껌과 예니콜의 꿈 대사도 후반부 결말과 연결되는 복선으로, 감독이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인식되지 않도록 일부러 과장된 연기를 넣어 각인시켰다고 밝혔습니다.

08년생이 도둑들을 10번 넘게 봤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봅니다.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 처음 한 번 끌어당기는 거라면, 반복해서 보게 만드는 건 최동훈 감독 특유의 티키타카 연출과 인물 하나하나에 쌓인 비하인드의 두께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틀어보시면, 분명히 그전엔 지나쳤던 장면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YYtcibQ86I&t=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