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blin, 드라마 도깨비 (우연, 애드립, 캐스팅 비화, 10년의 세월)
우연이 만든 명장면들, 실은 계획이 아니었다
도깨비를 다시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장면,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려고 했던 걸까?" 촬영 비화를 알고 나면 대답은 꽤 자주 "아니오"입니다.
주문진 방파제에서 찍은 은탁과 김신의 첫 재회 장면을 예로 들면, 그 날의 거친 파도는 감독이 설계한 미장센(mise-en-scène)이 아니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배경, 조명, 소품까지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날의 파도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선물한 우연이었습니다. 감독은 영화 '테이크 디스 왈츠'의 방파제 뒷모습 신을 오마주(hommage)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오마주란 선배 작품에 대한 경의를 담아 유사한 장면을 재현하는 기법입니다. 결과적으로 비가 그치고 파도가 치는 그 순간이 마치 신의 계획처럼 맞아떨어졌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13화의 마지막 김신이 사라지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클로즈업 컷을 더 찍을 예정이었는데, 롱테이크(long take)로 촬영한 김고은 씨의 감정 연기가 너무 완벽해서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롱테이크란 컷을 자르지 않고 카메라를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굴리는 촬영 기법으로, 배우의 감정 흐름을 날것 그대로 담아냅니다. 제가 볼 때 그 신이 유독 마음을 후벼파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은탁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김신이 오열하는 장면. 공유 씨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끌어올리다가 "액션" 소리에 바로 폭발하듯 몰입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이동욱 씨도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배우들의 심장이 강철로 용접되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이 장면을 알고 나서부터 그 말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애드립의 보고(寶庫), 도깨비가 더 완벽했던 이유
혹시 도깨비를 보면서 "이 대사, 대본에 있던 거 맞아?"라고 의심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 알고 보면 명장면의 상당수가 즉흥으로 탄생한 애드립(ad-lib)이었습니다. 애드립이란 대본에 없는 대사나 행동을 배우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삽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유 씨의 애드립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합니다. "옛날 같으면 너 나한테 말도 못 걸었어"라는 기싸움 대사, 저승사자의 수공 공격 앞에서 무서워하는 리액션, 귀신을 보고 격하게 비명을 지르며 김고은 씨에게 매달리던 장면까지 모두 현장에서 터진 즉흥이었습니다. 이동욱 씨 역시 자신감 배틀 장면에서 공유 씨의 포즈에 지지 않으려고 더 오버한 것이 그대로 채택되었고, 샐러드 위에 소스를 현란하게 뿌리는 독특한 제스처도 직접 제안해서 탄생한 장면입니다.
제가 도깨비로 이동욱 씨의 코믹 연기를 처음 접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좋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즉흥성이었습니다. 대본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거기에 자기만의 온도를 얹는 배우를 보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도깨비는 애드립 없이도 충분히 완벽했겠지만, 배우들의 센스 있는 즉흥 연기가 더해져서 비로소 전설이 된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애드립 장면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김신이 은탁의 소환을 기다리다 직접 찾아가는 장면에서 "내가 아주 바쁜 와중에 중요하게 있었는데 어떡할 거야?" 대사 — 현장에서 엔지가 여러 번 날 정도로 공유 씨가 공을 들인 애드립
- 저승사자가 맨밀군이라고 부르는 대사 — 이동욱 씨의 즉흥 삽입
- 공유·이동욱의 해피뉴이어 이후 티키타카 — 두 사람이 주고받은 완전한 즉흥 대화
- 덕화가 서류를 던지는 장면에서 육성제 씨의 리얼한 놀람 표정 — 공유 씨가 예상보다 강하게 던졌기 때문
- 두 사람의 레전드 등장신을 스스로 오마주한 장면 이후 이어진 즉흥 덕담 교환
캐스팅 비화, 5년의 기다림과 배우들의 선택
공유 씨가 김신 역을 맡기까지의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솔직히 이건 처음 들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김은숙 작가가 공유 씨에게 약 5년간 꾸준히 출연 제의를 보냈다고 합니다. 공유 씨는 2012년 드라마 '빅' 이후 드라마보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어 계속 거절했는데, 소속사 대표가 작품이 워낙 좋아서 보여주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본을 건네줬고, 그 대본이 결국 마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내 배우들이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는 경우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인데, 공유 씨처럼 장르를 가리며 신중하게 선택한 배우가 도깨비라는 작품과 만난 것은 결국 필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동욱 씨의 경우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제작진의 캐스팅 순위에 없던 배우였는데, 대본을 읽은 이동욱 씨가 먼저 "서브 주연도 상관없으니 꼭 하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합니다. 김은숙 작가는 기존 이동욱 씨의 이미지가 저승사자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이동욱 씨는 해외 출국 스케줄까지 파악해 비행기 티켓을 직접 구해 찾아갔습니다. 18년 차 주연급 배우가 서브 역할을 자처하며 그렇게까지 매달린 것이 결국 작가의 마음을 돌렸습니다. 공유 씨가 아니었으면 누가 김신을 했을지, 이동욱 씨가 아니었으면 누가 저승사자를 했을지 지금도 상상이 안 됩니다.
김고은 씨는 김은숙 작가가 영화 '은교'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였다고 합니다. 은탁이 화려하게 예쁜 캐릭터가 아니라서 더 좋았습니다. 두 신 사이에 있는 평범한 여고생의 싱그러움, 그게 김고은 씨 마스크와 정말 찰떡같이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첫사랑이었다' 장면에서 김고은 씨의 싱그러움이 1000% 발휘된 것 같아서, 여자가 봐도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유인나 씨는 오디션 당시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평소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 체질임에도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숙 작가로부터 "아니야,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된 당시 방영 기록을 보면, 도깨비는 비지상파 프로그램 최초로 드라마 선호도 1위를 기록하고 시청률 20%를 돌파한 작품입니다. 이 캐스팅들이 모두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숫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보면 보이는 것들, 10년 전과 다른 시선
9살에 봤던 도깨비를, 이제 은탁이 나이가 되어 다시 보면 어떤 것들이 새롭게 보이던가요? 저는 솔직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예쁘고 슬프다고 느꼈던 장면들이, 지금은 그 안에 담긴 맥락과 상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메밀꽃 설정입니다. 드라마 속 도깨비 민간전승에서 도깨비는 메밀과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은탁이 메밀꽃을 선물받는 설정이나 인형 이름이 '메밀군'인 것도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이는 두 사람의 운명적 관계를 처음부터 암시하는 복선(伏線)이었는데, 복선이란 뒤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서사 기법입니다. 9살 때는 그냥 귀여운 인형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작가가 얼마나 촘촘하게 이야기를 짰는지가 느껴졌습니다.
드라마의 부제인 '쓸쓸하고 찬란하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제목은 그냥 '도깨비'였는데, 감독이 제안한 한 줄이 부제로 붙으면서 작품 전체의 정서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김은숙 작가는 이 한 줄을 붙잡고 16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를 썼다고 하는데, 이렇게 언어 하나가 작품 전체의 뼈대가 된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골목 촬영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덕성여중고 사이 정독도서관 북촌 가는 길이 배경이었는데, 지금은 바닥에 안전 조명이 박혀 있어서 그 감성이 많이 깨져버렸습니다. 촬영 당시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마 근처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인사동 방향 상인들, 북촌 방문객들이 뒤섞인 인파였을 것 같습니다. 방송 차량도 눈에 띄었을 테니 소문이 빠르게 퍼졌겠죠. 그 시절의 거리가 지금은 많이 바뀌어버렸다는 게 괜히 아쉽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도깨비에서 가장 많은 애드립을 한 배우는 누구인가요?
A. 공개된 비하인드를 기준으로 하면 공유 씨의 애드립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싸움 대사, 비명 리액션, 저승사자를 향한 즉흥 대사 등 여러 명장면이 대본 밖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동욱 씨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즉흥 티키타카 장면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Q. 도깨비 촬영지 중 실제 캐나다 로케이션이 아닌 곳이 있나요?
A. 맞습니다. 은탁이 스테이크를 먹던 이국적인 식당은 실제 캐나다가 아니라 경기도 파주의 카페였습니다. 내부가 유럽풍으로 꾸며져 있어 캐나다 분위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선택된 장소입니다. 주문진 방파제처럼 실제 로케이션 장소도 있고, 세트와 CG를 결합한 장면도 많습니다.
Q. 김신의 검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요?
A. 공유 씨의 바디라인을 그대로 본 떠서 퀘스트라는 소재로 특수 의상을 제작했습니다. 의상 팀과 소품 팀이 협업해서 가슴 부분을 드릴로 뚫고 검을 직접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인물 주변의 바다나 하늘, 불꽃 등은 정교한 CG로 처리했습니다.
Q. 이동욱 씨는 처음부터 저승사자 역으로 낙점된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작진의 초기 캐스팅 목록에 없던 배우였습니다. 이동욱 씨 본인이 먼저 강한 출연 의지를 밝혔고, 김은숙 작가의 반대를 해외 스케줄까지 쫓아가며 설득한 끝에 캐스팅이 확정되었습니다. 그 열정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아는 저승사자 캐릭터는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Q. 도깨비 방영 10주년 특집 콘텐츠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방영 10주년을 맞아 주연 배우들이 모여 촬영한 특집 콘텐츠 '도깨비 10주년 여행'은 tvN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9시 10분에 방송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방영 일정은 변경될 수 있으니 공식 채널을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써니의 시선으로, 또 그보다 더 나이가 들면 삼신할매의 시선으로 이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작품 안에 그렇게 많은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 그것이 도깨비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당장 1화를 켜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g-UnBX7gXc&t=21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