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r : 천둥의 신 토르 1편 재발견 (캐스팅, 비주얼, 북유럽 신화)

영화 리뷰





솔직히 처음 토르 1편을 봤을 때 "이게 마블 영화 맞나?" 싶었습니다. SF 액션 블록버스터라기엔 분위기가 너무 고풍스럽고, 셰익스피어 무대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정체성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평가는 박했지만 MCU 전체를 놓고 보면 이 작품이 남긴 유산이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셰익스피어 감성으로 만든 아스가르드, 그리고 비주얼의 진심

토르 1편의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셰익스피어 원작 영화로 유명한 연출가입니다. 아스가르드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장면에 셰익스피어식 비극의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담았고, 그 결과 한국에서는 "노잼 마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해외, 특히 셰익스피어 문화에 친숙한 영미권에서는 그 분위기가 오히려 먹혀들어 나름의 흥행 기반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토르 1편이 그냥 평범하게 망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흥행 수치를 보면 전 세계 약 4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의 약 3억 7천만 달러를 앞섰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 이유 중 하나는 순전히 비주얼 때문이었습니다. 황금빛 아스가르드 도시, 일곱 빛깔 바이프로스트(Bifrost), 원색의 망토들. 바이프로스트란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무지개 다리를 뜻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단순히 화려하게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렬한 키 컬러를 쓰면서도 화면 전체 톤은 다운시켜 신화적인 고색창연함을 살려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MCU 전체를 통틀어 아트 디렉션(Art Direction), 즉 영상의 색감과 미술 설계 면에서 토르 1편이 손에 꼽힐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오딘의 보물창고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경 세계관 설계의 정밀함도 엿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서판, 이그드라실의 눈, 워록의 눈, 이터널 플레임 등 북유럽 신화와 마블 코믹스를 교차 참조한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고, 가짜 인피니티 건틀렛(Infinity Gauntlet)까지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인피니티 건틀렛이란 코믹스에서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제어하는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장착하는 장갑을 의미합니다. 이런 디테일들을 발견할 때마다 이 영화를 단순히 저평가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스팅이 MCU를 살렸다, 배우들 뒷이야기까지

제가 토르 1편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캐스팅입니다. SF 액션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별개로, 이 작품이 고른 배우들이 이후 MCU 전체의 뼈대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처음 화면에 등장했을 때 "아, 이 사람이 토르구나"라는 확신이 바로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토르 역을 따내기 위해 극단적인 벌크업을 감행했으나, 촬영에 들어가자 아스가르드 갑옷이 맞지 않아 특히 팔 부분에 혈액순환이 막힐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키워두었던 근육을 다시 빼야 했다는 비하인드는 처음 알고 꽤 황당했습니다.

톰 히들스턴의 경우는 더 흥미롭습니다. 원래 토르 역에 지원했다가 로키로 방향을 바꾼 건데, 당시 토르 역으로 뽑힌 크리스 헴스워스를 보고 "저 사람은 진짜 북유럽 신이네" 하고 납득했다는 썰이 있습니다. 로키라는 캐릭터에 맞게 다시 체중을 빼고 수척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 그 결과물이 MCU 역대 최고의 빌런 중 하나로 꼽히는 로키입니다. 로키를 맡기 위해 일부러 근육을 덜어냈다는 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신의 한 수였는지 모릅니다.

안소니 홉킨스의 오딘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르를 꾸짖으면서 갑옷을 하나씩 뜯어내는 장면, 그리고 대본에도 없던 애드리브로 묠니르를 집어 던지는 순간 로키가 진짜로 움츠러들었다는 비하인드를 알고 나면 그 장면이 새롭게 보입니다. 이 장면은 감독이 오마주(Homage)로 삼은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에서 영향을 받은 연출입니다. 오마주란 특정 작품이나 감독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의도적으로 유사한 장면을 구성하는 기법을 뜻합니다.

토르 1편 촬영 당시 주목할 만한 비하인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크리스 헴스워스는 벌크업 후 갑옷이 맞지 않아 근육을 다시 감량했다
  2. 톰 히들스턴은 원래 토르 지원자였으나 로키로 전환, 이번엔 반대로 체중을 줄였다
  3. 오딘 역 안소니 홉킨스의 묠니르 투척 장면은 애드리브였으며 톰 히들스턴의 놀란 반응도 진짜였다
  4. 크리스 헴스워스의 토르 1편 눈썹은 금발로 염색한 것으로, 케빈 파이기의 결정이었으나 이후 파이기 본인도 후회했다고 밝혔다
  5. 호크아이 카메오 장면은 제레미 레너 캐스팅 전에 촬영되어 나중에 편집으로 이어붙인 것이다

헤임달(Heimdall) 역의 이드리스 엘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헤임달은 원조 북유럽 신화에서 빛의 신, 별명이 '가장 하얀 신'인 존재라 처음 흑인 배우가 캐스팅됐을 때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영화 속에서 바이프로스트 위에 서서 황금 눈으로 9왕국을 감시하는 헤임달의 위압감은, 지금 봐도 MCU 통틀어 손꼽히는 비주얼입니다. 영화 초반 그의 눈동자에 아스가르드의 반역 흑막 로키가 이미 비치고 있다는 디테일을 처음 알았을 때는 진짜 소름이 돋았습니다.

북유럽 신화와 MCU, 겹쳐서 보면 두 배로 재밌다

토르 시리즈를 단순히 마블 영화로만 소비하면 절반밖에 못 즐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북유럽 신화(Norse Mythology)와 대조하며 보면 숨겨진 레이어가 보입니다. 북유럽 신화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온 게르만 민족의 신화 체계로, 오딘, 토르, 로키, 헤임달 등 MCU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격이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묠니르(Mjolnir) 표면에 새겨진 룬 문자(Runic Script)는 고대 게르만족이 사용하던 실제 문자 체계이며, "이 망치를 휘두르는 자, 번개와 폭풍을 다스릴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점도 신화 고증에 공을 들인 흔적입니다.

영화 속 퇸스베르그(Tønsberg)라는 노르웨이 마을도 신화적 맥락이 겹치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과거 오딘과 아스가르드 병사들이 서리 거인과 싸운 장소, 레드 스컬이 테서랙트를 발견한 장소, 그리고 라그나로크 이후 아스가르드 생존자들이 정착한 뉴 아스가르드까지 전부 같은 퇸스베르그입니다. 셀비그 박사의 옛날 책 삽화 속 오딘이 손에 테서랙트를 들고 지구로 내려오는 장면은 이 모든 연결고리의 복선이었던 셈입니다. 이 복선을 처음 알아챘을 때 "마블이 이걸 토르 1편부터 깔아뒀다고?" 하고 혼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로키의 출생 설정도 신화와 비교하면 흥미롭습니다. 영화 속 로키는 서리 거인의 왕 라우페이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북유럽 원전 신화에서 라우페이는 반대로 로키의 어머니로 등장합니다. 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로키 라우페이손'이라고 부를 만큼 어머니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화 속 로키의 자녀는 펜리르(늑대), 요르문간드(세계뱀), 그리고 헬(저승의 여신)인데 토르: 라그나로크의 빌런 헬라가 바로 이 헬입니다. 다시 말해 헬라는 신화 원전에서 로키의 딸인 셈입니다. 영화 속에선 그 관계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데, 이걸 알고 다시 보면 헬라와 로키의 장면들이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오딘의 말 슬레이프니르(Sleipnir) 이야기도 빼놓기엔 아깝습니다. 요툰헤임 전투에서 오딘이 타고 나타난 다리 여덟 개 달린 말이 바로 슬레이프니르인데, 이 말이 신화에서 태어나는 과정이 정말 기묘합니다. 아스가르드 성벽 재건을 조건으로 협상을 붙인 건축가 거인이 있었는데, 로키가 아름다운 암말로 변신해 거인의 말 스바딜파리를 꾀어내 공사를 방해합니다. 그 후 암말 로키와 스바딜파리 사이에서 태어난 말이 슬레이프니르로, 로키가 오딘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북유럽 신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로키의 변신 능력과 성별 유동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만큼 복잡한 캐릭터인데, 이런 원전을 알면 MCU의 로키가 왜 그토록 입체적으로 그려지는지 이해가 됩니다. 북유럽 신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북유럽 신화 항목이나 노르웨이 대백과사전(SNL)의 노르드 신화 항목에서 원전 내용을 더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역시 무지개다리 끝에서의 오딘과 로키입니다. 오딘이 로키의 손을 붙잡고 있다가 고뇌 끝에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로키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가 체념한 듯 손을 놓아버립니다.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로 로키라는 캐릭터의 모든 비극을 압축해낸 장면이라 지금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토르 1편이 캡틴 아메리카 1편보다 흥행이 더 좋았나요?

A.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토르 1편이 캡틴 아메리카에 밀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흥행 수치는 다릅니다. 토르 1편은 전 세계 약 4억 4천만 달러,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는 약 3억 7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토르 1편이 캡틴 아메리카 1편보다 무려 3배 이상의 관객 수를 동원했습니다.

Q. 묠니르에 새겨진 글씨는 실제 문자인가요?

A. 네, 실제 문자입니다. 묠니르 윗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문자는 고대 게르만족이 사용한 룬 문자(Runic Script)로, "이 망치를 휘두르는 자, 번개와 폭풍을 다스릴 것이다"라고 해석됩니다. 룬 문자는 실제 역사 속에서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지역에서 수백 년간 사용된 문자 체계입니다.

Q. 신화 속 로키와 영화 속 로키는 많이 다른가요?

A. 상당히 다릅니다. 신화에서는 라우페이가 로키의 어머니로 등장하고, 로키의 자녀에는 헬(영화의 헬라), 펜리르, 요르문간드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가족 관계가 대부분 생략되거나 변형되었고, 특히 헬라가 로키의 딸이라는 설정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원전 신화와 비교하며 보면 영화가 다르게 읽히는 재미가 있습니다.

Q. 토르 1편에서 헤임달이 흑인 배우로 캐스팅된 이유가 있나요?

A. 북유럽 신화 원전에서 헤임달은 '가장 하얀 신'으로 불리는 빛의 신이라 이드리스 엘바 캐스팅 당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신화적 권위와 존재감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우선시했고, 결과적으로 영화 속 헤임달은 MCU 최고의 캐스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 결과물을 보면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Q. 토르 1편의 퇸스베르그가 다른 MCU 작품에도 나오나요?

A. 네, 여러 작품에 걸쳐 등장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에서 레드 스컬이 테서랙트를 발견한 장소가 퇸스베르그이고, 토르: 라그나로크 이후 아스가르드인들이 새롭게 정착한 뉴 아스가르드 역시 같은 퇸스베르그입니다. 오딘이 먼 옛날 테서랙트를 이곳에 보관했다는 복선이 토르 1편의 셀비그 박사 장면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토르 1편은 MCU 단독 작품으로 보면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캐스팅, 비주얼 미술 설계, 북유럽 신화와의 연결 고리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는 지금도 충분히 재평가받을 여지가 있는 작품입니다. 1편을 한 번만 봤다면 신화 원전과 비교하면서 다시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분명히 처음 볼 때와는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4prXo_jkRI&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