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atouille 라따뚜이 비하인드 (제작 비화, 이스터에그, 명작)
협찬도 거절당한 영화가 명작이 된 배경
영화 라따뚜이는 픽사 스튜디오(Pixar Animation Studios)가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입니다. 픽사란 1986년 스티브 잡스가 루카스필름에서 독립시킨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로,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인크레더블 등을 만든 곳입니다. 디즈니 산하로 들어간 직후 발표한 첫 작품이다 보니 제작진 측에서는 식품 회사들의 협찬이 줄을 설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주인공이 '하수구에 사는 쥐'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식품 회사들이 협찬을 거절했고, 심지어 라따뚜이 브랜드로 야심 차게 준비했던 와인 라인업마저 와인 협회의 반대로 출시가 무산됩니다. 미성년자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꽤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막힌 셈이죠.
그 반발이 오히려 영화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협찬을 받았다면 특정 브랜드를 억지로 녹여야 했을 텐데, 그런 제약 없이 '위생'이라는 주제 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픽사 제작진은 위생 관념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납득시키기 위해 여러 장치를 의도적으로 설계했습니다.
- 레미가 주방에 처음 들어가는 장면에서 비누 거품 가득한 싱크대로 빠뜨려 자동으로 세척되는 효과를 연출했습니다.
- 다른 쥐들과 달리 레미만 두 발로 걷게 하여 앞발, 즉 손을 최대한 바닥에 닿지 않게 했습니다.
- 후반부 집단 요리 장면에서는 쥐들이 단체 샤워를 마친 뒤부터 모두 이족 보행(二足步行)을 합니다. 이족 보행이란 뒷다리만으로 걷는 방식을 뜻하며, 이 장면에서는 위생 처리가 끝났음을 시각적으로 알리는 신호로 기능합니다.
이 정도면 협찬 거절이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변수가 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115만 개의 털과 파리 현지 리서치, 픽사의 집착
제가 라따뚜이를 볼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건 디테일의 밀도입니다. 레미의 털 하나하나가 빛에 반응하는 방식, 물에 젖은 요리사 옷의 질감, 파리 골목길 벽의 낡은 포스터까지. 이게 다 허투루 만들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캐릭터 리깅(rigging)부터 이야기하자면, 리깅이란 3D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의 뼈대와 관절을 설계하여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온몸이 털로 덮인 쥐를 주인공으로 쓴다는 발표가 났을 때 그래픽 팀이 제일 먼저 절망한 이유가 바로 이 털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레미는 일반 쥐 캐릭터보다 훨씬 많은 115만 개의 털을 구현해야 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이를 위해 스튜디오 복도에서 약 1년간 실제 애완 쥐를 직접 기르며 움직임, 코와 귀의 진동, 꼬리의 탄성 등을 끊임없이 관찰했다고 합니다.
장면 고증(考證)에 대한 집착도 남달랐습니다. 고증이란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 현상을 정확히 확인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레미가 훈제 버섯을 만들다 번개를 맞을 뻔하는 장면에서는 버섯이 실제로 불에 그을렸을 때 어떤 질감과 색감이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버섯을 지져봤습니다. 링귀니가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직원 한 명이 요리사 복장을 그대로 갖춰 입고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옷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달라붙는지 기록했습니다.
파리 현지 조사도 빠질 수 없습니다. 제작진 전원이 직접 파리를 방문해 프랑스 최고급 레스토랑 다섯 곳을 순회했고, 파리 5구와 몽마르트 구역을 발로 누비며 영화의 배경이 될 장소를 촬영했습니다. 링귀니의 아파트는 몽마르트의 좁은 골목을, 구스토 레스토랑은 파리 5구의 실제 건물을 모델로 했으며, 에밀과 레미가 우정을 나누는 장면의 배경은 알렉상드르 3세 다리입니다. 파리 곳곳의 실제 분위기가 화면에 그대로 살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스 시네마테크(Cinémathèque française)도 이 영화의 파리 재현 방식을 높이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이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레미가 링귀니 아파트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볼 때마다 잠깐 파리에 다녀온 기분이 듭니다. 배경 재즈와 낡은 건물 색감이 맞물리는 그 순간은 어떤 여행 광고보다 파리를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터에그와 "Anyone can cook"이라는 메시지의 진짜 의미
픽사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숨은 이스터에그(Easter egg), 즉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비밀 요소들을 찾는 것입니다. 라따뚜이에도 여러 층위의 이스터에그가 존재합니다.
우선 픽사의 공식 시그니처 이스터에그인 피자 플래닛 배달 차량은 레미와 스키너의 추격 씬 뒤편에서 슬쩍 등장합니다. 암호 A113은 두 군데에 숨어 있는데, 어깨가 벌어진 요리사 옆 벽화 속과 링귀니 아파트 첫날밤 TV 속 기차 측면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습니다. A113이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Arts)의 애니메이션 강의실 번호로, 픽사 창립 멤버 다수가 이 강의실 출신이라 거의 모든 픽사 영화에 숨겨 넣는 일종의 서명입니다.
캐릭터 설계에도 재미있는 근거들이 있습니다. 스키너(Skinner)라는 이름은 미국 심리학자 B. F.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에서 따왔습니다. 스키너 상자(Skinner Box) 실험으로 유명한 인물인데, 이 실험은 특수 제작된 상자에서 조건 자극에 따른 쥐의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것으로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의 대표 사례입니다. 쥐를 상자에 가두고 행동을 관찰했던 그 심리학자의 이름이, 레미를 철장에 가두는 캐릭터의 이름이라는 것은 꽤 의미심장한 오마주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분들은 그 장면에서 단번에 알아챘을 것 같습니다.
이고(Anton Ego)의 어린 시절 회상 장면도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레미의 라따뚜이를 한 입 먹은 이고가 어린 시절 기억으로 돌아가는 그 장면은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를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 효과란 특정 냄새나 맛이 과거의 감정적 기억을 강렬하게 되살리는 현상으로,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그 집의 구조가 영화 초반 쥐를 잡으러 총을 들고 나왔던 할머니 집과 같다는 분석이 한동안 유행했는데, 정작 감독이 집 구조를 새로 설계할 시간이 부족해서 모델을 재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고의 어머니 설은 공식적으로 부정됐습니다. 그래도 이고가 라따뚜이를 먹고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는 구조 자체는 프루스트 효과를 의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영화 제목의 음식인 라따뚜이(ratatouille)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전통 가정식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채소볶음 정도에 해당하는 일상적인 음식인데, 영화 속에서는 최후의 비장의 카드처럼 등장합니다. 그래서 레미가 라따뚜이를 선택했을 때 주변 캐릭터들이 당황하는 겁니다. 그런데 라따뚜이 레스토랑 버전인 컨피트 비갈디(confit byaldi) 레시피는 실제로 세계적인 셰프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가 제공한 것으로, 완성까지 최소 4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고가 그걸 맛본 건 4시간을 기다린 결과이거나, 레미가 미친 속도로 만든 것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저는 전자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이고가 그만큼 기다릴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캐릭터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어릴 때는 쥐가 요리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픽사가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Anyone can cook)"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굳이 쥐를 선택한 게 얼마나 영리한 결정이었는지 비로소 보였습니다. 요리와 가장 거리가 먼 존재, 사회적으로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존재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구조는 그 자체로 메시지입니다. 버라이어티(Variety)의 당시 리뷰도 이 지점을 영화의 핵심 성취로 평가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따뚜이 마지막 요리는 실제로 어떤 음식인가요?
A. 영화 후반부 이고에게 대접하는 요리는 컨피트 비갈디(confit byaldi)라는 이름의 요리로, 세계적인 셰프 토마스 켈러가 제공한 레시피를 기반으로 합니다. 얇게 슬라이스한 채소를 층층이 올려 오랜 시간 천천히 익히는 방식으로, 완성까지 최소 4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라따뚜이가 고급 요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원래는 프랑스 남부의 일상적인 가정식입니다.
Q. 픽사가 라따뚜이 제작 중 식품 회사 협찬을 받지 못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주인공이 쥐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식품 회사들이 협찬을 거절했고, 라따뚜이 브랜드 와인 출시도 와인 협회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협찬을 받았으면 오히려 특정 브랜드를 끼워야 하는 제약이 생겼을 텐데, 결과적으로 제약 없이 영화 본연의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영화 속 파리 배경은 실제 장소를 참고한 건가요?
A. 맞습니다. 픽사 제작진이 파리를 직접 방문해 촬영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현했습니다. 링귀니의 아파트는 몽마르트 구역, 구스토 레스토랑은 파리 5구의 실제 건물, 레미와 에밀이 우정을 나누는 장소의 배경은 알렉상드르 3세 다리입니다. 단, 레미 아버지가 쥐약 가게를 보여주는 장면의 배경도 1872년에 설립된 실제 파리 해충 구제 업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Q. A113이 라따뚜이에서 어디에 숨어 있나요?
A. 두 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방 장면에서 어깨가 넓은 요리사 주변 벽화 안이고, 두 번째는 링귀니가 레미를 집에 처음 데려온 날 밤 켜져 있는 TV 속 기차 옆면입니다. A113은 픽사 창립 멤버들이 다닌 CalArts 강의실 번호로, 거의 모든 픽사 작품에 하나씩 숨겨져 있습니다.
Q. 이고의 어머니가 영화 초반 쥐를 잡으려던 할머니라는 분석이 맞나요?
A. 이 분석이 맞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감독 브래드 버드가 직접 시간이 부족해 집 구조 모델을 재활용한 것뿐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냥 재활용이라는 입장입니다. 다만 레미가 그 할머니 집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고, 이고가 같은 구조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설정은 우연치고는 꽤 아름다운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사 영화 중 가장 명작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라따뚜이를 선택합니다. 토이 스토리를 꼽는 분들도 많고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볼수록 새로운 디테일이 보이고 볼 때마다 파리의 재즈가 귀에 맴도는 영화는 라따뚜이 말고는 잘 없었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마지막 이고의 회상 장면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 보실 만합니다. 그리고 이미 보셨다면, 오늘 밤 한 번 더 틀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L19CmjgTkg&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