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atar (세계관 설정, 생물 진화, 숨겨둔 복선)
## 판도라 세계관 설정, 생물 진화, 그냥 예쁜 배경이 아닙니다
아바타를 단순히 "그래픽 좋은 영화"로 소비하면 절반도 못 즐기는 겁니다. 제가 처음엔 개봉 당시 3D 안경 쓰고 3시간을 버티다 속이 뒤집혀서 이미지가 안 좋았는데, 나중에 다시 핸드폰으로 보고 나서야 이 영화의 진짜 밀도를 알게 됐습니다.
판도라의 육지 동물들이 전부 다리가 6개라는 설정은 단순한 외형 차별화가 아닙니다. 판도라는 지구보다 공기밀도가 높아 대기 저항이 크고, 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육지 동물들은 앞의 네 다리로 강한 견인력(traction force)을 만들고 뒷다리 두 개는 보조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설정입니다. 여기서 견인력이란 지면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쉽게 말해 앞다리가 '엔진'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지구에서는 말 같은 4족 보행 동물이 뒷다리로 추진력을 내는 것과 정반대 구조입니다. 저도 처음엔 "다리 6개가 그냥 외계스럽게 보이려고 넣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 설계 원리를 알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나비족의 진화 경로도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나비족은 육지 동물임에도 다리가 4개뿐이고 눈도 한 쌍인데, 이는 오래전에 다리 6개에서 4개로, 눈 두 쌍에서 한 쌍으로 진화한 결과입니다. 감독은 이 진화의 연결고리로 프롤레무리스(Prolemur)라는 생물을 설정에 넣어두었습니다. 프롤레무리스는 눈이 한 쌍이고 신경다발이 나비족처럼 뒤통수에 달려 있으며, 팔이 팔꿈치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있어 6개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4개에 가깝습니다. 생물학의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개념을 SF 세계관에 이렇게 입체적으로 적용한 사례는 쉽게 보기 힘듭니다. 수렴진화란 혈연관계가 없는 생물이 비슷한 환경 압력을 받아 유사한 형태로 진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판도라의 핵심 동물들이 어떻게 설계됐는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이어호스: 스코틀랜드 클라이즈데일 말에서 영감, 판도라 생태계에서 꽃의 수분(pollination)을 돕는 매개체 역할
- 바이퍼울프: 늑대 모티브, 아프리카 점박이 하이에나의 울음소리 채용, 무리 사냥 특성
- 타나토르: 그리스 신화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서 작명, 호랑이처럼 단독 생활 및 개체별 영역 보유
- 이크란: 독수리 눈(원거리 포착)과 염소 눈(약 300도 시야)을 결합해 사냥 실패율 최소화
이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그냥 새로 만든 게 아닌데, 다이어호스는 영화 쥬라기 공원의 랩터 울음소리를, 타나토르는 같은 영화의 티라노사우루스 울음소리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들을 때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 제임스 카메론이 숨겨둔 복선과 이스터에그들
아바타의 스토리가 단조롭다는 비판이 없지 않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 부분은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카메론 감독은 스토리의 단순함을 세계관의 밀도와 장치들로 메우는 방식을 택했고, 그게 이 영화를 15년이 지나도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술집에 있는 제이크 뒤로 광고판에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리라"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지나갑니다. 지구에서 시궁창 인생을 보내던 제이크가 판도라에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는 복선을 이미 첫 컷에 심어둔 겁니다. 이런 복선 장치를 내러티브 포어섀도잉(narrative foreshadow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후반부 사건을 초반부에 암시하는 서술 기법으로, 아바타 전편에 걸쳐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퀴리치 대령의 연설 장면 배경도 그냥 세트가 아닙니다. 배경에 줄이 13개 있고 왼쪽 구석 패널엔 숫자 50이 적혀 있는데, 이는 성조기의 13개 줄과 50개 별을 오마주한 것으로,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의 유명한 장면을 참조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요소입니다. 군사-식민주의 비판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셈입니다.
토루크 막토 장면도 단순한 클라이맥스가 아닙니다. 이크란은 파트너를 처음 봤을 때 죽이려 드는 방식으로 선택 의사를 표현하고, 한번 파트너가 되면 평생 같이 갑니다. 영화 중반부에 네이티리와 제이크가 비행 중 토루크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에서 토루크가 네이티리는 무시하고 오직 제이크만 쫓는데, 이미 토루크가 제이크를 파트너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제이크가 토루크 막토가 될 것이라는 복선을 그 장면에서 이미 보여준 겁니다. 처음 봤을 땐 그냥 쫓기는 장면인 줄만 알았는데, 이걸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그레이스 박사 아바타가 처음 깨어날 때 입고 있는 탱크탑에 스탠포드 로고가 있는데, 이는 그레이스 박사 역의 시고니 위버가 실제 스탠포드 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이스터에그로 넣은 것입니다. 놈의 모자에 박힌 점자가 1969를 의미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판도라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을 인류의 달 착륙에 빗댄 감독의 장치입니다. 천문학에 관심 있는 저로서는 이 디테일이 특히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영화의 생태적 세계관 설계와 관련해서, 상호 연결된 생태계를 다루는 설정은 생태학(ecology)의 네트워크 이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생태학이란 생물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판도라의 나비(Eywa) 신경망 설정이 실제 균류 네트워크인 균근(mycorrhizal network)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은 이미 여러 생물학 커뮤니티에서 다뤄진 바 있습니다([출처: Smithsonian Magazine](https://www.smithsonianmag.com)).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각본 초안을 1995년에 완성한 뒤 10년을 기다리며 CG 기술이 따라잡기를 기다렸는데, 2002년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의 CG를 보고 "이제 때가 됐다"고 판단해 2005년 제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준비 기간 동안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소설 화성의 존 카터, 영화 늑대와 춤을, 디즈니의 포카혼타스,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까지 폭넓게 참고해 각본을 다듬었다는 점도 이 영화의 밀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의 시지각(visual perception)과 몰입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풍부한 세계관 설계가 관객의 서사 몰입도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ScienceDirect - Journal of Cognitive Science](https://www.sciencedirect.com)).
결국 아바타를 한 번만 보고 "그래픽 좋은 영화"로 끝내기엔 아깝습니다. 스토리가 다소 예측 가능하더라도 그 안에 쌓인 설계의 층위가 너무 두텁습니다. 저는 지금도 종종 다시 꺼내 보는 편인데, 볼 때마다 놓쳤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바타 2에서 카메론이 이 세계관을 어떤 방향으로 확장하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판도라의 설정을 머릿속에 넣고 보면 훨씬 다른 경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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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nevgfE1QvI
